
훗카이도여행, 사계절 내내 특별한 여정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의 여유를 찾기 위해 떠나고, 또 어떤 이는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나에게 있어 훗카이도여행은 후자에 가까웠다. 일본 열도의 최북단, 광활한 자연과 깨끗한 공기가 공존하는 곳.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그곳에서의 하루하루는 ‘여행자’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짙게 만들어 주었다.
고료카쿠타워에서 바라본 하코다테의 전경
훗카이도의 남쪽, 하코다테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항구 도시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도시는 밤 경치로만 유명한 곳이 아니다. 특히 고료카쿠타워는 하코다테에서 가장 먼저 방문해야 할 명소 중 하나다.
고료카쿠는 일본의 근대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다. 원래 막부 말기의 전쟁 유적지였던 이곳은 그 형태부터 독특하다.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별 모양을 하고 있는데, 과거 서양식 요새로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한눈에 보고 싶다면 고료카쿠타워에 올라야 한다. 107m 높이의 이 타워에 올라가면, 계절마다 다른 매력을 뽐내는 하코다테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다.
내가 방문했던 시기는 늦가을이었다. 단풍으로 붉게 물든 고료카쿠 공원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물길이 조화를 이루며 절경을 만들어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요새의 별 모양이 더욱 뚜렷하게 보였다. 고료카쿠타워에 오르면 단순히 풍경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하코다테의 역사까지 가까이 마주할 수 있다. 한 층에는 고료카쿠의 역사와 관련된 전시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이곳이 왜 중요한 곳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이곳은 봄이 되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일본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벚꽃 명소 중 하나로 손꼽히는데, 별 모양의 요새를 따라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새하얀 눈으로 덮인 겨울의 모습도 멋지지만, 개인적으로는 봄과 가을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라 생각된다.
후라노, 끝없이 펼쳐진 라벤더 밭의 향연
훗카이도의 중심부로 조금 더 발걸음을 옮기면, 전혀 다른 분위기의 풍경이 펼쳐진다. 후라노는 훗카이도를 대표하는 자연 관광지 중 하나로, 계절의 색감이 뚜렷한 곳이다. 특히 여름이 오면 이곳은 라벤더 향으로 가득 찬다.
'팜 도미타(Farm Tomita)'를 아는가? 이곳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라벤더 농장 중 하나로, 여름철이면 보라색 물결이 넘실거리는 장관을 연출한다. 처음 방문했을 때 그 광경은 내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다. 그저 몇 개의 밭에 라벤더가 심어져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실제로 마주한 후라노의 라벤더 밭은 굉장히 거대하고 압도적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보랏빛 들판과 그 사이를 걷는 여행자들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라벤더 시즌이 되면, 후라노 지역에서는 다양한 라벤더 관련 상품도 만날 수 있다. 라벤더 아이스크림은 물론이고, 라벤더 향이 가득한 향초와 오일까지 기념품으로 구매하기 좋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가장 매력적인 것은 향기였다. 여름 햇살 아래서 퍼지는 라벤더 향이 코끝을 스치며 여행의 피로를 단번에 사라지게 만들었다.
후라노는 여름뿐만 아니라, 겨울에도 매력적인 여행지다. 광활한 설원에서 스키나 스노보드를 즐길 수 있는 것은 물론, 겨울 경관을 감상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개인적으로는 여름과 겨울 모두 각각의 매력이 있다 생각한다. 하지만 후라노다운 색감을 보고 싶다면, 역시 라벤더가 피는 계절에 방문하는 것이 가장 좋다.
아사히산동물원, 북쪽의 야생을 담은 특별한 공간
후라노를 거쳐 아사히카와로 이동하면, 또 하나의 특별한 명소를 만날 수 있다. 바로 아사히산동물원이다. 보통 동물원 하면,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떠오를 수 있지만, 이곳은 다르다.
아사히산동물원은 일본에서 가장 먼저 ‘행동 전시’를 도입한 곳으로 유명하다. 일반적인 우리에 갇힌 동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동물들이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관찰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유빙곰(북극곰) 수조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북극곰은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지만, 아사히산동물원에서는 물속을 헤엄치는 북극곰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 거대한 몸짓으로 물속을 유영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또한, 펭귄 산책이 이곳의 명물 중 하나이다. 매년 겨울, 눈이 쌓이면 펭귄들이 떼를 지어 산책을 한다. 이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은 아사히산동물원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다. 일본 내에서도 동물 복지를 신경 쓰는 동물원으로 손꼽히며, 덕분에 동물들이 좀 더 편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아사히산동물원은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여행자를 맞이한다. 여름에는 초록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동물들을 더욱 활기찬 모습으로 볼 수 있고, 겨울에는 설경 속에서 생존 전략을 펼치는 북방 동물들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어른들도 충분히 흥미롭게 즐길 수 있는 동물원이기에,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꼭 한 번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훗카이도는 사계절 내내 색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여행지다. 하코다테의 근대적 역사, 후라노의 자연, 그리고 아사히카와의 동물들이 어우러지며 여행자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한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내가 왜 여행을 계속해서 떠나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혹시 지금 훗카이도로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 이 세 곳을 꼭 방문해보길 바란다.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동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